시(詩)/시(詩)
이향란 - 굴욕의 맛
누렁이 황소
2022. 6. 9. 14:29
아무도 몰라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지만
들통나도 견뎌야지
더 이상 번식하지 않도록
무진장의 힘으로 껴안을 테니까
힐끗, 매서운 눈초리와 내리까는 시선과
날아다니는 비웃음과 콧방귀 코웃음 아래의 참혹
자존심이라는 가시에 줄줄 걸리고 마는 속울음 따위
까짓것 낮아지라지
바닥 바닥 납작해지다가
빗물과 함께 땅 아래로 스며들다가
어둠의 맹지에 한 톨 씨앗으로
처박히면 그만이지
마음의 피는 꿀꺽 삼키고
몸의 흙은 툭툭 털어 내면 되지
짓밟히고, 미끄러지고, 와장창 깨져야만 느낄 수 있는
굴욕의 만찬
괜찮아
양념이라곤 전혀 없는
질겨 빠진 습자지의 맛
(그림 : 류영도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