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정자경 - 두 개의 현을 켜는 정오

누렁이 황소 2022. 6. 6. 15:08

 

빗방울이 차창을 두드린다
소리가 풍경을 분실하는 동안
빗방울은 빗소리 안으로 발자국을 숨긴다

핸들을 잡고 마포에서 서교로 돌아가는 사거리
메트로놈처럼 와이퍼가 소리의 난간을 찾아
지휘봉을 더듬는다

태엽이 풀린 고장 난 하늘
노란 신호등 무심히 보다 라디오 볼륨을 높이면
눈이 놓친 길을 귀가 따라가는 정오,

아무리 다가가도
한 치 다다를 수 없는 거리를
지속적으로 밀고 당기는
두 개의 손가락이 듣는 비

저만치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다시 풍경을 지운다

빗소리가 빗방울을 부르는
두 개의 현 사이로
비는 아직 그칠 줄 모르고.

(그림 : 조성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