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이윤훈 - 짐꾼 장씨(張氏)
누렁이 황소
2022. 5. 19. 20:08
뒷집에 사는 짐꾼 장씨는
큰 짐을 보면 발꿈치에 힘이 간다
짐을 짊어질 때면 굽은 그의 등이
성씨에 걸맞게 시위 당겨진 활처럼 팽팽하다
이른 새벽 뻐근한 등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음이
더러 기쁨이라는 장씨
질 짐이 있어 도리어 살만하다고
사는 일의 무게와 부피를 묵묵히 헤아리며
등짐을 제 자리에 쏜살같이 부리고 나면
그래도 새끼들의 배를 주리지 않고 지금껏
볼품없는 등짝 하나로 잘 버텨왔음이 미덥다
잠시 그늘에 들었다 인화되어 나오는
구부정한 장씨 대체 얼마나 많은 짐을 짊어졌을까
그러나 한 평생 그가 등에 실어온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음을
그는 너울대는 담배연기로 침묵이다
살아가는 것은 갈등 속에
칡(葛)처럼 등(藤)처럼 어우러져 꽃피우는 거라고
그저 세상 끝 자신을 부리는 일이
등꽃 지듯 하면 좋겠다고 행복하겠다고
세상의 그늘진 등에 곤한 하루를 기대 놓고
우동 한 그릇으로 속을 데우고 집으로 가는 길
어둠의 흡지 속으로 빨려 들어간 그 너머
초가을 궁수자리가 반짝인다
(그림 : 유준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