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허영숙

허영숙 - 곡우

누렁이 황소 2022. 5. 18. 18:42

 

비 오자 겨우 논물 드는데

다 버리고 남도로 간다는 당신의 말은 슬펐네

곳간의 단단한 볍씨 같은 말

땅 헐거워지면 뿌려지고

비가 오거나

비가 오지 않더라도 당신이나 나나

살아가고

살아지고

 

제 한 몸 스스로 거두는 나무도 꽃을 버리고

허공을 비워두네

물자리 깊은데

서로 엉성한 절기를 지나네

 

고랑 터는 비라 하더라도

아프게 우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이어서

하늘을 다그치네

 

구름이 숨차게 뒤를 따르네

 

청명 지나 입하사이 한 사람이 깊숙이 숨네

 

올해는 울음도 풍년이어서

그 질긴 곡식 낫질하느라 손 마디마디 붉게 헐겠네

곡우(穀雨) : 24절기의 여섯 번째 절기. 곡우(穀雨)는 청명(淸明)과 입하(立夏) 사이에 있으며,

음력 3월 중순경으로, 양력 4월 20일 무렵에 해당한다.

곡우의 의미는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는 뜻이다.

(그림 : 심수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