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소희 - 찻물을 부으며

누렁이 황소 2022. 5. 11. 10:49

 

빈 잔에 마른 꽃잎을 넣고 온기를 부을 때

내 맘이 엎질러져 어딘가로 가려 할 때

 

지구 반대편의 우리는 가까운 듯 멀어서

그 흔한 굿나잇 문자를 보내지 못한다

 

모두가 쉬운 듯 보여서

닮은 옆모습을 찾지 못해서

구겨짐으로 덮고 싶다는 생각

어둠을 지우며 반 바퀴 돌아서 온 별이

창살 틈, 햇살 찻물에 녹는다

 

돌아, 돌아온 뜨거운 글자들

마취가 서서히 풀리는 몸으로

한껏

부풀 대로 부풀어

분홍색도 붉은색도 아닌

마른 차꽃 한 송이

 

바깥은 환해지고

찻잔 안에는 어둠이 헤집고 들어와도

차갑고 어둡게 바래가는 꽃을

피우고 싶은 마음

 

맺혀 있던 것들은 언젠가 모습을 드러낼 텐데

 

꽃망울 터지려는 마음에게

여기 있으렴

흔들리지 말고

(그림 : 최인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