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금용 - 담쟁이, 너의 발랄한 옥빛

누렁이 황소 2022. 5. 6. 20:23

 

왜 너를 보면 아플까

너의 발랄한 옥빛이

간지럼 잘 타는 너의 웃음소리가

풍랑이 일던 어젯밤의 두려움을 거뜬히 넘기고

막 세수한 뽀얀 얼굴로 콘크리트 벽을 부드럽게 감싸니

기적인가, 물기가 스민다

 

발걸음 멈추고

네 두 팔 두 다리 벌려 춤추며 그려놓은 푸른 세상을 바라본다

너의 낭랑한 웃음소리가 들렸던 것일까

비바람을 이겨내고 지어놓은 푸른 옷 한 벌이 펼쳐진다

눈썰미 좋은 지하 방 수선집 할아버지도

크게 두 팔 벌려 가로세로 크기를 가늠해보는데

콘크리트 벽 틈바구니로 엄지손톱만한 잎을 내밀고

저마다 햇살 받쳐 들고 푸른 손짓을 하고 있으니

너로부터 꿈이 자라는 줄 알겠다

빛이 넘치는 옥탑방에서 어둠이 넘치는 지하방까지

푸른 농담을 던지는 담쟁이넝쿨,

이 악물고 달려왔을 네 열정에 목이 잠긴다

 

나이를 먹고도 사랑이 뭔지 모르겠지만

녹주석 빛 울렁증에 심장이 춤추는 걸 보면

시린 사랑이라는 걸 알겠다

널 보면 아프다

(그림 : 이미경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