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이병연 - 꽃의 말

누렁이 황소 2022. 4. 25. 19:11

 

꽃은 눈이 멀도록 눈부시게 왔다 간다

 

황홀한 순간,

꽃은 사진 찍듯 저장되지

 

세상이 텅 빈 공갈빵 같은 날

오래된 기억을 클릭해

 

내가 삭은 식혜 속 밥알 같은 날

잊고 지내던 나를 불러내

 

꽃은 빛깔만 고운 게 아니야

화심에 맺은 순정

부르기만 하면 잠근 문을 열고 맨발로 기어 나오지

 

사는 것 잠깐이라

사랑을 안고 갔다는 꽃의 말

 

장롱에 오래 넣어둔 옷처럼

접혔던 꽃잎이 허공을 밀어내며 피어나

 

한 생이 저만치 갔다가 돌아오는 거야

(그림 : 이선희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