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안은숙 - 빈손이 부푼다
누렁이 황소
2022. 4. 24. 12:37
마루에 앉아 졸고 있는 엄마의 손
느슨하게 열린 방심이다
빈손이 부풀 때가 있다면 그때
손은 늙은 손이 된다
꽉 쥐면 작아지는 것과 넘치는 낮의 꿈
제멋대로 접혀서 핀 꽃들은
작아지거나 떨어진다
미닫이문을 열지도 않고 나가는 오후의 햇살
꼭 쥐고 있던 목련이 손바닥처럼 떨어진다
나는 봄을 햇살처럼 쥐었다
몇 개의 손으로 접었던 자국을 가지고 있어
접었던 날들은 손안에서 구겨지거나 작아진다
놓치는 것이 있어 손들이 자라고
놓친 것을 세어보려고 손가락이 있다
그러므로 손은 내 몸의 오랜 기록장
낡고 오래된 저녁의 등과
눈먼 고양이는 언젠가 쥐었다가 떠나보낸 것들
나는 이제 한 장의 꽃잎도 갖고 있질 않다
거친 손으로 살짝 빈손을 만들면
손안에서 부푸는 것들이 있고
마루에 앉아 졸고 있는 엄마의 손
열린 저 손바닥이 낯설다
한 송이 접혀있었던 꽃송이
주먹 쥔 손처럼
내 집은 아직 고요하기만 하다.
(그림 : 백중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