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문창길 - 득량만 밀물들 때

누렁이 황소 2022. 4. 23. 16:19

 

말없이 무념의 귀를 기울이면

쉼없이 다가오는 저 바람의 흔들

이미 파도의 잠을 쫓으며 길을 만든

명민한 기억들이 갯내를 지우고

게딱지 같은 득량도의 역사를 

파묻고 있다 오 보아라 저

보성만에서 떠내려오는 목선을 

그 안엔 섬을 섬으로 보지 않고 

뭍을 뭍으로 보지않고

바람길을 따라 뭍 섬으로 길을 오가는 

우리 아버지와 내 어머니의 뭉클한

연정이 실려 있니라

하늘에 박힌 청청한 별빛을 보며

바다길을 가늠했던 무정한 시대를

알싸한 정분으로 흘려 보냈니라

 

밀물드는 하오 그물질로 불거진 

득량만 사내들의 팔뚝엔 이미

헤진 닻줄과 잡고기 한 상자 힘에 겨웁다

승냥이 처럼 다가오는 횡포한 일상들이

사십줄의 어깨를 손아귀로 덮칠 때

의심많은 갯바람

아낙의 무명자락을 흔든다

이제 섬도 아닌 뭍도 아닌 그래서

길도 잃어버린 득량갯벌 서녁 끝에서

쭈삣거리던 물고래들을 무참히 포획한다

포고목까지 차오른 물비늘을 벗긴다

슬픈 희망처럼 그 살속엔

생존 모든 관계가 채워져 있다

(그림 : 신인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