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문창길 - 소래포구 황씨
누렁이 황소
2022. 4. 23. 15:56
끈적한 새벽안개를 사르며 일어서는 태양
헤진 그물 끝으로 빛살을 뻗친다
달큰한 정기가 서리는 걸까
밤새 뒤척이던 마누라의 정분에 녹아든 걸까
나는 떠지지 않는 눈두덩을 비비며
뻐근한 두 다리에 비린내로 찌든 작업복을 꿴다
오늘은 좀 더 먼 바다로 나갈 것이다
먼 바다로 나가면 나갈수록 나의 희망은 저 먼
수평선 끝자락으로 밀려나지만 그래도
손 익은 그물을 던지면
반 꿈은 이루어지는 것 같다
포구 어귀엔 이미 뱃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연평호 선장 윤 씨가 먼저
눈인사를 보내며 어깨를 툭툭 친다
제발 우리 배 좀 같이 타자 으응
지난봄부터 윤 선장은
내 일손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떠날 채비를 마친 뱃사람 하나 둘
뱃머리를 따라 갑판 위에 오른다
저마다 걷어붙인 소맷자락엔 검정 이끼들이
뼈저린 사연으로 까막따개비처럼 붙어 있다
미련 없이 떠나 어김없이 그 자리로 돌아올
우리네 포구의 생목앓이들
망망 바다에 욕망의 모든 촉수들을 풀어헤치고
끝없는 절망과 또는
애증 어린 희망을 포획하기 위해
태평양 연안의 낯선 꿈들을 재고 있다
(그림 : 김주형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