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정하해 - 돼지국밥집 목련

누렁이 황소 2022. 4. 18. 16:19

 

허름한 담을 딛고 올차게 다가오던 당신이라는 무렵

첫 봄은 거기서부터다

 

할머니가 끓여내는 동태탕을 먹으면서

담벼락 위로 좌정한 당신을 보는 순간은 내가 부풀었다

마당 절반을 드리운 나무가

해마다 당신을 여기로 데리고 오는 것이 생인 것처럼

 

할머니 또한 손맛을 먹이는 일이 생인 것처럼

구부린 등이 고봉인 것처럼

밥심이 후했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새로 온 주인은 푸성귀 같았다

푸성귀가 처음 하는 일

목련을 뜯어내고 돼지국밥, 간판을 다는 것

 

당신을 참수하는 일, 눈 깜짝하는 사이였다

봄은 헛디디며 왔다

 

그루터기에 앉아 당신이 당신을 찾을 즈음

돼지국밥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점점 푸성귀를 닮아 무성해져갔다

 

뚫린 봄을 메우는 건 참 쉽다

 

절실할 것도 없이 우겨넣는 입술이 점점

주둥이가 되어

발랄,

 

당신이 던져주고 간 내 안에 북채 한 잎

끓여도 국물이 나지 않는

아주 배고픈 것

(그림 : 곽나원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