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박소유 - 용미길 점집골목
누렁이 황소
2022. 4. 9. 20:17
점집 간판이 꽃 이름이다
피난 온 사람들 궁금증이 꽃 대궁을 타고 올라가는 꽃망울처럼 다닥다닥 점집을 불러들였던 거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을 쓸어내렸고
사람의 생사가 꽃보다 더 나을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평생 사람들 그늘 속만 헤집고 다니느라 한 번도 활짝 피어보지 못한 골목 안 점집들
마른 씨앗처럼 점점 더 쪼그라져 있다
길가에 노인과 고양이가 나와 앉아 있다
무엇보다 제 운명이 가장 궁금할 테지만
어떤 앞날이 닥치더라도
흘러가기 위해 온 것이니 그냥 흘려보내면 된다는 게 오늘의 점괘
수많은 불빛이 몰려왔다 몰려가는
영도다리 아래
한 번도 높이 들어 올려진 적 없는 골목이 오래 쪼그리고 앉아있다
(그림 : 이청운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