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박소유 - 꽃집

누렁이 황소 2022. 4. 9. 19:45

 

하루아침에 빈터가 생겼다

간판도 없이

안보다 바깥에 화분을 더 많이 내놓아

다닐 때마다 나뭇잎이 이마를 스치곤 했던 

꽃집

 

솜씨 없는 주인이 엉성한 꽃다발을 내밀 때마다

다시는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한번도 없어지기를 바란 적은 없었는데

꽃집이 사라졌다

 

내 기억은 여기에서 멈추는데

생활이란

물 흐르듯 지나가는 것 같지만

남는 것도 있어서

 

빈터를 지나면서도

머리를 옆으로 돌리고

바닥에 늘어놓은 꽃모종을 피하느라

가장자리로만 걷는데

 

꽃집하면

자꾸만 떠오르는 기념일

아름다웠다면

나는 오랫동안

그 꽃집을 기념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림 : 성하림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