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미화 - 재전당서포
남산동 인쇄골목
일몰의 시간을 걷는다면
전나무 숲에 든 듯 바람소리 술렁거린다면
한 사내가 직지인쇄 앞에서 백상자를 옮겨 싣는다면
이제는 떠날 수 없는 일이라면
그늘을 물고 골목이 곪고을 버틴다면
신풍인쇄 경성인쇄 경북봉투 기웃거린다면
재전당서포,
여기 어디 즈음이었을까
책을 찍고 책방 열었던 곳
마음의 안쪽을 살피는 일이라면
말씀을 더듬는 일이라면
집채만 한 풀들이 자라는 페가를 끼고
어둠을 물고 오는 한 사내 만난다면
수염이 우거진 듯, 수북한 바람 만져진다면
활자를 고르는 힘겨운 생
손끝으로 먹그늘나비 퍼덕이는 허기를 부른다면
비로소 책판이 짜여진다면
이곳과 저곳의 전언이 통과하는
고금
긴 여운의 눈빛을 가로지르는 눈빛이라면
어느 곳으로든 열리는 이 골목
흰오리로 지켜내는 일이라면
뒤돌아보면 거기, 길을 물었던 적이 있다
재전당서포(在田堂書鋪) : 1907년무렵부터 1930년 초까지 목판 인쇄본인 방각본으로 서적을 출간하고 팔던 곳
당시 행정구역상 대구 동상면 후동(현재 중구 포정동), 또는 대구 쇄환동(남산동 일대 인쇄골목으로 추정)에 위치했던
출판사로 달성의 광문사와 함께 대구지역의 대표적인 방각본 출판사.
남산동 인쇄골목 : 대구 중구 남산2동 계산오거리에서 남문시장 네거리까지 약 700여m 일대에 위치한 남산동 인쇄골목은 1930년대 활판인쇄가 들어오면서 인쇄업소가 밀집하여, 대구의 인쇄산업의 중심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편집, 조판, 인쇄, 제본 위조의 4백여개의 인쇄업체가 현재까지도 자리잡고 있다. 남산동 인쇄골목에는 인쇄 발달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남산동 인쇄전시관이 있으며, 2000년부터 2005년까지 대구인쇄문화축제도 개최하였다.
흰오리 : 하얗게 센 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