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권지영 - 깻잎의 소회

누렁이 황소 2022. 2. 17. 21:15

 

텃밭 구석 자리 한 평 땅에서

햇살보다 그늘을 안고 산 날이

더 많았다

 

꽃처럼 주목을 받지도

과실수처럼 대우받지도 못하는

흔하디 흔한 야생초

아니 채소 그냥 깻잎……

 

비 오는 날은 비, 눈 오는 날은 눈

햇살 좋은 날은 햇살

성실하게 스스로 팔 벌려 받아내며

악착같이 살아왔다

 

그러나

네모반듯한 한 평의 세상은

더 이상 깊이 뿌리 내리는 걸

더 이상 지면 넓히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이 만큼! 정해놓고

더 이상 발을 뻗지 못하게 했다

 

내 일터는 삼년 마다

그렇게 고비를 맞았고

운신의 폭 넓히지 못하고 갈아타며

성실하게 채워온 육년의 경력도

승진의 기회도 꿈처럼 날아가 버렸다

 

그래

세상이 나를 주목하지 않거든

내가 세상에게 다가가리라

나를 한층 향기롭고 다채롭게 버무려

존재감 한껏 드높이리라

(그림 : 안창표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