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학중 - 처음의 노래로 돌아가려 하네

누렁이 황소 2022. 2. 16. 11:25

 

끝에서 끝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서였네

낯선 이의 목소리가 미지를 열 때가 있네

처음 듣는 노래의 첫 소절에게

마음을 모두 내어주듯이

당신의 부름에 나는 그대를 향해 서네

그 순간 당신은 그대의 목소리로만 열 수 있는 문을 여네

그것은 이미 나의 문이 아닌 낯선 이의 문

나를 닮았으나 나를 벗어나 있는

미지의 빛으로 밝아진 문턱에서

경첩이 펼쳐지는 소리를 듣네

놀랍게도 그 안에 그대의 모습이 있네

이미 와 있었던 모습으로

내가 그대를 안다는 것이

내 삶의 유일한 비밀이라는 듯

비밀은 온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이여

이 모든 다정함은 이미 그대의 것이네

다시 있을 낯선 곁의 온기여

가까이에 오는 그대를 나는 부르지 못하고

당신은 먼 곳으로 떠나는 모습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네

 

미지의 문은 끝까지 닫히지 않은 채로

흘러나오는 온기에 목소리를 맡기네

미지는 그렇게 처음의 노래로 돌아가려고 하네

(그림 : 이영희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