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손석호 - 골목

누렁이 황소 2022. 1. 13. 11:38

 

사는 게 골목이라면

빨리 걸어 들어가고

아주 천천히 돌아 나올 수도 있겠지

힘들 때 한 번쯤 열린 대문 앞에 걸터앉아 쉴 수도 있고

어디쯤일까

물어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었지

걷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기웃거렸던 마흔 즈음의 낯선 골목들

걸음마다 삐걱거리며

너라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라는 골목에서 늘 너만 빠져나갔다

힘겹게 구부러질 때마다

바람도 돌아 나가는 막다른 어느 모퉁이

목구멍에 걸린 무언가를 억지로 뱉어 내기 위해

선 채로 컥컥거렸다

후미진 골목 같은 나를 삐뚤삐뚤 돌아 나오며

어느 골목이든

들키고 싶지 않은 눈물이 있고

그곳에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는 고장 난 가로등이 있는 이유를

고장 난 가로등의 꺼진 시간이 더 긴 이유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그림 : 박용섭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