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세영 - 쑥부쟁이의 기억
누렁이 황소
2021. 12. 24. 15:34
늦가을 바람에 떠밀려
휘청거리는 쑥부쟁이 꽃대,
꽃잎이 무말랭이처럼 오그라들고 있다
꽃의 형상이 꽃차 향기로
갈라진 입술 사이로 기화하고 있다
그 일렁이는 형상이 기파로 피어오르는 것이
가야 할 길 너머로 신기루처럼 언뜻 보인다.
마른 꽃잎이 화문석이 되고
풍장 하는 꽃대가 뼛가루가 되어
쑥부쟁이 기억으로 흩날리는 들길에서
지나온 길을 이제야 되새겨 본다
멧노랑나비의 긴 입술이
가슴골 헤집고 깊숙이 들어왔었던 기억이
해거름 몽유하는 나를
개펄에 빠진 해처럼 뒤뚱거리게 한다
오늘의 내가,
쑥부쟁이 들길을 걷는 것은
등을 떠미는 바람 때문이 아니라
가슴 설레는 재회의 네가
연보랏빛 물든 꽃이었다는 기억 때문이다
내일의 내가,
별이 된 기억들이 꽃잎처럼 쏟아져 내려
이 들길에서 나도 다시,
쑥부쟁이가 될 것이라는 약속의 꿈 때문일 것이다.
(그림 : 손돈호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