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한미영 - 김치찌개 집에서

누렁이 황소 2021. 12. 21. 09:16

 

사람들이 찌개 그릇처럼 바글바글 끓어 넘친다

허기 훅 올라오면서 나는 단골집에라도 들른 기분인데

초가을 햇살 함께 바글거리는 창가에 자리 잡고 앉는다

옆자리 늙은 사내 둘

한 사람은 관운장처럼 앉은키 훌쩍하시다 가끔 한 번씩

수염 없는 턱을 쓸어내리곤 한다 다른 사내는

순한 웃음에 소주 한 잔 놓고 조곤조곤 아무개 제자 안부 묻고

다른 사내는 아무개도 많이 늙었어요 한다 우리가 그 아무개

사업보증 선다고 은행 왔다 갔다 할 때가 옛날이네요

잔 비우며 한 사내가 그래도 그때가

선생 하기 참 좋았지요 한다

아, 영혼에 허기 있다면 저 옛날 말씀이

꼭 한 숟갈 요기가 되지 않을까

식탁이 벌겋도록 흘러 떨어지던

허튼 웃음

허튼수작

계속 냄비 속에서 자작자작 졸아든다

그날 나는 수송동 오래된 김치찌개 집에서

세상에 없는 김치찌개라 감탄하며

낮술 석 잔이나 섞어가며

아무래도 저 두 사내 이야기가

100년 넘게 이어왔다는 이 집 김치찌개 맛

비결 아닐까

연신 감탄하며

(그림 : 이용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