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기홍 - 살아남기

누렁이 황소 2021. 12. 10. 17:41

 

빚으로 공사하는 회사들 자빠지고

돈맛에 벌여놓은 낙지발 회사도 넘어지고

일 끊겨 돈 못 받는 인부들 속처럼

중단된 공사장 철근도 벌겋게 삭아내려

일 구하기가 사십대 노총각 이십대 처녀 붙들기보다 힘들어

자존심이란 자존심 팽개치고

어쩌다 기별 온 공사장에 우르르 모여든 떼거지들

서로 놀라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푹 퍼진 보리누룽지 빼앗길까

으르렁대며 핥아먹는 똥개들처럼

동지는 어디 가고

콩 한 개라도 나눠먹자는 심보는 어디 가고

앞 눈치에 옆 눈치 뒤꽁지 눈치보기

아따따 이러다가 모가지가 캭! 될라

철근 많이 메고 뛰어다니기

어느 놈이 슬라브에 방석 까냐

엉덩이 바짝 추켜들고 갈쿠리질

갈쿠리 반 바퀴만 돌리며 남의 속도 따라잡기

이러다가 이러다가······

남들 체조하는 일곱 시로는 불안해

은근슬쩍 오야지 눈에 띄게

삼십 분 당겨서 어두울 때 일 시작하기

캄캄해서 손 놓기

그러다가 굶었으면 굶었지 더러워서 못하겄네

떠난 사람 뒤에 안심하기

노임에 불만 없기

집에 가면 허리가 끊어질락말락

어쩔겨 묵고 살아야 쓴디

동지가 밥 멕여주간디

양심이 돈주간디

나중에 어쩔갑세

어서 나가 어서 나가

눈치보기 뛰어다니기 양심구기기 오줌참기 똥참기

점심 먹고 안 쉬기

그러다가 오늘도 떠나가는 사람

에라이 똥개 새끼들아 잘 처묵고 잘살아라

우리가 누구 때문에 이 모냥이여

지독한 놈들

쓴 소주 나발 불고 굵은 소금 한 입 물고

소득없이 떠나가는

떠나가는 의리지기

(그림 : 이형준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