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강현미 - 먹다
누렁이 황소
2021. 12. 10. 17:36
용케 면접까지 가서 떨어진 취직자리
이번에도 회삿밥은 못 먹고
라면에 찬밥을 말아 꾸역꾸역 먹는다
취직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쓰레기통은 쓰다만 자기소개서를 구겨 먹고
지원한 회사는 먹을 게 없는가
아흔두 번째 내 이력서를 말아 먹었다
슬쩍 엄마를 쳐다보며 먹는 밥은 눈치도 함께 먹는데
눈칫밥은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허기만 먹는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 거냐 잔소리를 먹고
확 시집이나 갈까 마음 먹다가
대기업 다니는 친구 전화를 씹는다
어렵게 얻은 편의점 알바 자리는 며칠 만에 잘리고
용돈 주는 엄마 앞에서 주눅을 먹는다
시간은 가는데 해 놓은 것도 없이
홀랑 나이만 먹고 나잇살만 더 먹는다
토익 점수라도 올려야겠다고 공부하는 밤,
얼굴은 찬물을 먹고
어딘가에는 내 자리가 있겠지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림 : 허나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