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송연숙 - 셈 치기

누렁이 황소 2021. 12. 8. 20:03

 

없는 셈 치고 나면

없던 곳이 불룩해진다

탁탁 손을 털고 나면

불끈, 두 주먹 안엔 꽉 쥔 각오가 가득하다

 

받을 셈과

지급해야 할 셈이 같다면

그건 홀가분한 마음을 얻는 일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셈법엔

눈치 빠른 숫자들과

눈치 없는 숫자들이 뒤섞여 있다

 

자연의 계산법은 평균치를 따지는 일

작년, 가지 휘어지던 자두나무가

올해는 잎만 무성하다

해걸이 하는 유실수들의 셈법엔

그들만의 평균값이 숨어 있는 것이다

 

아마 올해의 자두나무는

있는 셈 치기를 해서 저렇게 가벼운 게 아닐까

앞산이 내 것이라

 

뜬구름이, 별이, 오늘 산책한 호수가

모두 내 것인 셈 치면

쉼표 같은 호수가 우묵하게 들어낮고

자두의 신맛이 입안 가득 고여 오기도 하는데

 

셈 치기는 마음의 셈법

있는 셈 치고 나면

없던 곳이 두둑해지기도 한다

(그림 : 김대섭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