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신용 - 비 오는 달밤의 허수아비 노래
누렁이 황소
2021. 12. 6. 15:27
나는 술집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 어둠이 내리고
빛의 그 앙상한 해골 위에 부드러운 살이 덮이고, 세상이
제 얼굴을 되찾는 때를, 몽롱히 턱을 괴고
온몸 누덕누덕 하꼬방을 짓는 취기에 실려, 마치 경전을 읽듯
술을 마시며, 내 몸에서 우수수 떨어져내리는
소금꽃잎을 바라보곤 했다.
내 삶의 터,
콘크리트, 그 거부의 몸짓만 우거진 공사장을 떠나
지친 영혼을 쉬게 하는 인도의 베레나스인 양, 이 저녁 시간
비틀거리며 찾아든 내 귀소(歸巢)의 술집,
마치 다비를 하듯 독을 마시며, 세상에---- 내 추락에 대한
증오의, 시퍼런 눈빛을 꽂아넣을 가슴이
없는 자의 그 황당한 몸부림에 홀로 저물어지곤 했다.
눈의
흰자위가 노오랗게 변하고, 뱃속에는 복수가 꿀렁이고
얼굴에는 저승꽃 같은 기미가 꺼멓게 타고
부종으로 온몸 퉁퉁 부어올라도, 지금은 종말처럼
포근히 어둠이 내리고, 술잔이 비워질 때
그리고 취기의 망치가 의식의 관절 마디마디를 내리칠 때
친구가 없어도 좋았다.
지게꾼 십 년 세월이면 세상의 어떤 아름다움에도
기대를 걸지 않게 되지 ----, 홀로 턱을 괴고
철거촌처럼 무너지고 있노라면 보였다. 못났으므로
살아 있을 가치가 있다는 의미 같은 것 ---- 무적(霧笛)의 신음으로 짓씹으며
나는 정말 술집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
삽도 질통도 내 생애 밖으로 내팽개치고 싶은 날.
(그림 : 이상권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