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선옥 - 남편은 방전 중
누렁이 황소
2021. 12. 6. 15:22
칠순을 넘기고야
불똥처럼 튀던 성격이 녹록하다
마른 장작에 불붙어
뜨겁던 화력도 뚝 떨어지고
나란히 앉아 티브이 드라마를 보다가
눈물을 찍어내는 낯선 얼굴이다
지칠 줄 모르고 직선만 고집하던
그 성격
40년을 사는 동안, 지금은
굽어지는 법을 아는 줄 알았다
저녁상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아
입싸움에 밀리면
큰소리에 억압당하던 지난날 기억들이
저장된 영상처럼 재생된다
복수라도 할 것처럼 눈 속에서 칼날을 휘두르는 순간
찌리 릿!
기다렸다는 듯
숨겼던 속내를 송곳처럼 드러낸다
아직도 그 성격 죽지 않았다는 신호다
가끔은 꺼내 보고 싶었던 속내
궁금했던 전율에 나자빠지듯 놀란 감전이다
때론, 살갑고 유순해질 때도 있지만
플러그를 꽂지 않아도 불빛이 튄다는 건
조금씩 방전되어가는 중이다
(그림 : 장정근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