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우대식 - 귀거래사
누렁이 황소
2021. 11. 11. 17:26
돌아온 듯 보이지만 돌아온 적이 없다.
돌아갈 것처럼 보이지만 돌아갈 곳이 없다.
이것이 나의 귀거래사다.
시간의 미래만이 나의 고향이다.
그곳에 설령 꽃이 피지 않고 마실 생수가 없더라도 그리워하리라.
낯선 어느 거리, 몽유의 회벽을 개어 바른 건물 앞에서 나는 헤매리라.
그 집 앞에 흑 박태기 보랏빛 꽃이 피어 있다면 입은 맞추겠지만 사랑하지는 않으리라.
술도 사양하겠다.
담요를 한 장 다오.
부끄러운 아랫도리를 감추고 바다로 향한 길 위에서 동백 아가씨 같은 절창의 노래나 부르겠다.
아주 오랜 옛 친구들이여, 푸른 하늘에 동백이 뚝뚝 지던 그때를 생각하며 코러스를 넣어다오.
허밍이어도 좋다.
내 노래에 대한 야유여도 좋다.
한 때 사랑했던 그대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나의 먼 미래를 탓하지 말아다오.
해일이 몰려오거나 폭설이 몰아치거나 그곳에 당도하면 노래 부르겠다.
푸르다 하얗다. 이것이 나의 귀거래사다.
(그림 : 홍경표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