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허형만

허형만 - 아들에게

누렁이 황소 2021. 11. 9. 22:35

 

아들아 이 애비에게

시간의 의미를 묻지 마라

지금 너희 나이 때 애비가

어느 간이역 담장에 기대어 피어 있는

장미꽃을 만났는지

어느 강가에서

강물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단다

 

아들아 이 애비에게

삶이란 무엇인지 묻지 마라

지금 너희 나이 때 애비도

그 누구로부터

삶의 정의를 듣지 못했다

다만 홀로 밤하늘의 별빛을 바라보며

그렇게 할 수 있음에 감사했을 뿐이다

 

우리가 스치고 지나온 것들

우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들

예기치 않게 정수리에 꽂히는 비꽃 한 방울

 

한 겨울 숨을 고르며 흐르는 얼음장 밑 개울물 소리

지나오고 보니 그것이 시간이었다

지나오고 보니 그것이 삶이란 거였다

(그림 : 조규석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