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구재기 - 마침표 하나

누렁이 황소 2021. 10. 18. 19:06

 

볼 수도 없고

전혀 보이지도 않는데

닦아가는 일은 또, 얼마나 먼 길일까

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딱 알아차렸다면

또다시 분별할 필요는 없다

바람이 한가지로 불 때라도

나무나 물이나 구름이나

제 각각의 몸짓으로 흔들리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끄달릴 필요가 있을까

웃물 아랫물이

한 방향으로 흐르더라도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흐르는 것이 어찌 제 탓만이겠는가

머물지 않는 한

길을 가기에는 까다롭고 힘들다

동행하는 나무도

더 이상 닦으며

제 그림자조차 버릴 데가 없다

함께 할 부역조차도

벌써 끝났다고 볼 수 있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곳에서 마침표 하나, 찍고 싶다

(그림 : 안기호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