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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영 - 쓸쓸한 위로

누렁이 황소 2021. 10. 17. 16:35

 

오후 네시, 뒷목을 끌어당기는 피로가 이슥하다

 

잘 볶아진 원두로 내린 드립 커피나

커피머신에서 갓 뽑아낸 에스프레소로는

해결할 수 없는

설탕과 커피와 프리마의 황금비율이 만든 종이컵

커피의 치명적인 매력을 아는지, 순서지를 뽑아

기다리는 사람들 틈에서 곧 부서질 것 같은

낡은 수레 하나

종이컵 커피를 마시던 아버지

입가에 묻어나던 안도의 미소가

땀을 흘리다 주름진

혈관마다 빠르게 도는 블랙 수액

위태롭고 쓸쓸하지만 반짝 피어오르던

 

백원짜리 동전 세 개가 만든 위로

혹시

당신이 또렷한 목소리로 그 커피가 우리에게

미칠 수 있는 여러 개의 해악을 반나절쯤

나열한다 해도

오후 네시는 그렇다

손에 쥔 꼬깃한 순서지를 던지고

화살기도보다 빠른 달달한 6온스 종이 커피에

기대 이 어둔 터널을 지나고 싶은

(그림 : 허은영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