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황형철 - 숟가락 열쇠

누렁이 황소 2021. 10. 5. 19:54

 

마을 끝 외딴집

문고리에 걸려 있는 숟가락

 

밤낮으로 문풍지를 지난 빛이나 숨

미루나무 두릅나무 찔레

무단으로 세를 든 직박구리 가족의

소릿결이

무시로 문고리를 통과하고 있어

 

파장처럼 메아리처럼 번져서

산을 쌓고 강물이 출렁이고 벌판이 넓어지고 저녁이 오고 새로운 별자리가 생기고

 

어떤 잠금이

이토록 모난 데 없이

동글할 것인가

 

문고리를 벗겨볼까

생각은 자꾸 찰까당거리는데

순순한 주인을 가만 기다리며

포도 넝쿨처럼 마음이 푸르게 뻗어나는 건

세상 수말시로운 열쇠 때문

 

숟가락과 문고리의

사분사분하면서도 고상한 기품을

좁은 소견이나마 문장으로 옮기며

 

이 둥근 평정(平靜)을 곁에 두고서는

소연히 흘러가는 나이쯤 잊고 싶어지기도 하여

(그림 : 방복희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