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한상연 - 폐허의 내부
누렁이 황소
2021. 9. 14. 12:27
평택 고덕지구 도로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집성촌 주택들
바람이 건들거리며 곰팡이 핀 벽을 뜯어먹고
떠돌이 개들이 모여든다
허공의 무게에 철근 골조가 휘어지고
달빛은 공명의 발자국 뚜벅거리며
희미한 그림자를 마당에 풀어놓는다
싸늘한 아랫목에 때 절은 잠이 뒹굴고
문지방 위 빛바랜 액자,
떠나간 얼굴이 갇혀 있다
기척이나 생기가 사라진 건물은 어둠의 묘지
몇백 년 먼지를 둘러쓴 시간이 빠져나가고
기울어진 서까래에 적막이 거미줄 친다
철거라는 현수막이 걸린 담 밑
잡초는 봄볕에 땅을 이고 기지개 켜고
유빙처럼 떠도는 소문을 입증하듯
재개발 플래카드가 펄럭인다
폐허를 받아들인 건 사람들이다
(그림 : 김혜미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