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박가경 - 다만
누렁이 황소
2021. 9. 11. 11:51
서두르지는 마
그렇게 말하던 너에게 가는 길
버스 정류장 벤치는 따뜻해 보였다
어떤 기다림들이 흘린 마음일까 생각하는데
오늘은 내 발목이 한없이 가늘다
어떤 불행을 꿈꾼 듯하다가도
그런 꿈을 꾼 적은 있었나 묻는다
몇 대의 버스가 지나갔고
몇 사람이 다가와 버스를 타고 떠나갔다
여기는 다 어디론가 떠나려는 사람들의 세계였나
난 섬처럼 우울해져야 할까
그럴 일이 뭐 있다고
혼자 말하는 방식이 나는 좋다
내가 늘 입던 파스텔 톤의 티셔츠는
봄에 더 잘 어울렸는데
너는 항상 가을에 그 옷을 입는 이유를
묻곤 했다
그렇게 우리 사이에는
우리가 모르는 계절이 살고 있다
아픈 거야
아픈 게 맞구나
끝없이 도착하는 버스처럼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림 : 유예진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