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여태천 - 이십 년

누렁이 황소 2021. 9. 6. 09:53

 

거기, 윤곽도 색깔도 없던

거기에 내가 있었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때 당신은

촘촘히 적힌, 계절이 한참 지난 우편엽서를

다시 읽고 있었지.

하지만 눈은

눈은 내리지 않았지.

어쨌거나, 머리 위의 별은 만족스러운 듯 반짝였고

우리의 얇은 두 어깨가 으쓱하도록

봉숭아의 빛은 오래도록

선명했네.

 

나는 오직

해변의 빈집처럼 조용히

말할 수밖에 없었지.

감겨오는 눈을 비비며

저 어둠이 나를 완벽하게 지울 때까지는

그때까지는 점점 자랄 거라고

 

당신과 나란히

파도처럼 쓰러지고 싶었던

거기, 날짜변경선 위에

여전히, 거기에, 우리는

(그림 : 이성태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