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복효근

복효근 - 채송화 피는 날에

누렁이 황소 2021. 9. 4. 13:24

 

마당에 풀을 뽑을 때

어쩌다 심지도 않은 채송화 어린 싹을 보면

무성하게 피어서 꽃 피울 기약을 믿진 않아도

차마 뽑지도 못하던 날이 있어

 

물 주거나 발길에 밟히지 말라고

표식을 해두거나 하지도 않으면서

차마 뽑지는 못하고

어쩌다 그것이 정말 꽃이라도 피울 양이면

못내 미안코 대견하고 눈물겨워서

세상을 보살피는 그 무엇을 생각하기도 했다

 

이 세상 너머

눈물 너머 죽움 너머 그 어떤 크나큰 손길이

나를

어쩌다 그의 마당에 찾아온 꽃씨처럼 여기고

차마 뽑지 못하고

비 내리고 바람 불어 주는 듯이도 생각되어서

 

마당을 걷는데도

길이 사뭇 조심스러워지는 날이 있기도 하다.

(그림 : 김한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