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최영랑 - 큐브의 목적

누렁이 황소 2021. 8. 23. 13:00

 

별들이 회전한다

 

한덩어리인 감정을

쭉쭉 펴서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래서 슬픔이 어느 한 조각만으로 존재한다면

 

보이지 않는 면, 안쪽에 새겨져 있는 것은

나의 무한한 결핍일까

 

습관처럼 모래시계를 뒤집고

열 손가락의 힘을 한 끝에 누적시켜

큐브를 돌린다

 

슬픔의 전부를

한 면 안에 모을 수 있다면

밀실은 완벽해질 수 있을 텐데

 

나는 온전하게 큐브를 배반한 적이 없다

 

치명은 작은 조각 같은 것이 아니라서

큐브 속 슬픔은 슬픔 속 큐브

 

큐브만 남겨 놓고 떠난 너의 얼굴에 또 갇히고 만다

 

나는 너에 대한 방향을 멈추지 않고

한 번 더 모래시계를 뒤집는다

 

모래알은 전부 떨어지고 착각이 더 많이 뒤섞인다

(그림 : 신제이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