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홍계숙 - 봄날의 자전거

누렁이 황소 2021. 7. 10. 11:21

 

해묵은 숙제에 싹이 돋네요

나를 양보하느라 정작 내 시간을 사지 못했던 날들, 깊숙이 감춰둔 용기와

멀어지는 나를 바라보다가 주머니에 넣어둔 설렘 하나 귀퉁이가 다 닳았어요

샛노란 두려움을 안장에 태우면 꼭 붙들어 줄 듬직한 손이 필요한데
때마침

누군가 부드러운 봄의 시간을 내놓았네요
당근마켓에
그것, 내가 살게요 당근인 걸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꿈이 운동장을 끌어당겨요 두 개의 바퀴가 굴러옵

니다

비틀대는 꽁무니를 단단히 붙들어주는 당신의 손은 봄처럼 따뜻해요
햇살이 산수유 꽃대를 세우듯 허리를 꼿꼿이 세우면 개나리 울타리처럼

타다탁, 꽃망울을 터뜨릴 수 있을까요

붙잡은 손 놓은 줄도 모르고
봄의 바퀴가 한참을 굴러가고 있어요

꽃들도 빈 가지 위를 두발자전거로 달리고 있습니다

(그림 : 김연화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