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종제 - 늙은 앵두나무

누렁이 황소 2021. 7. 5. 13:51

 

손에 손에 든 불로

뜨겁게 달아오른 6월에는

왜 붉은 것들만 눈에 띄는 것인지

담장 아래 앵두가 실하게 열렸다

굳게 다문 저 입술을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칠흑처럼 어두웠던 일천 구백의 그 때

이팔 청춘으로 낯선 땅에 끌려가

흑백의 사진 한 장 속에서

평생을 붙잡혀 있었던 여인네들

원치 않는 위안을 주면서

앵두라고 불리웠던 그녀들

온몸이 망신창이가 되어

입밖으로 토해낸 열매가

총알이거나 칼날이거나 틀림없다

모진 목숨 차마 끊지 못하고

돌아온 집 마당에도

휘휘 늘어지도록 앵두가 열렸다

그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아

바닥에 떨어진 앵두가

지천으로 발에 밟혔다

이제 흰머리 가득한 저 나무에

앵두가 열리지 않는다고

늙은 여인네들 몇이서

침묵으로 시위를 하고 있다

한꺼번에 달아난 생을 되찾으려고

붉은 핏덩어리를 토해내고 있다

(그림 : Jeon 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