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문정영

문정영 - 독작

누렁이 황소 2021. 6. 29. 16:09

 

태양과 대작 중이다

먼저 타오르는 사람이 자기 행성을 떠나기로 했다

아침노을 한 잔에 먼저 하늘이 불콰했고,

제빛에 눈이 부신 태양은 고개를 돌리고 바람을 마셨다

찬바람 한 잔에 늦가을이 취했다

저녁은 태양이 마실 수 없는 독주

날짜 변경선을 넘어가기로 했다

먼여행은 혼자 즐기는 낮술 같은 것

자꾸 요일을 바꾸며 태양과 술잔을 부딪쳤다

태양이 떨어지면 나도 저무는 것

이별과 연민은 몸의 어느 곳에도 새길 수 없는 문신

지금 술에 진다면 일찌감치 소멸로 가는 길

너에게로 답이 건너가기 전에 나는 자꾸 어지러웠다

빛에 타버린 나비의 날개가 술잔에 떨어졌다

너보다 내가 먼저 타버리기로 작정했다

(그림 : 이홍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