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류병구 - 수국은 부끄러웠다

누렁이 황소 2021. 6. 29. 15:49

 

섬새가 울었다

억센 바닷바람도 잠시 올라
물기를 말리고 가는 소매물도
폐분교 언저리

향기랄 것도 없는 풋내음이 고스란한

풀섶에서

수태를 해 본 적 없는 수국이
처녀의 꿈을 낳고 있었다
숨을 죽여야 알아들을 내밀한 산통

연두던가
아니, 빨갛더랬나
참을 수 없이 부끄러운 저 순정한 빛깔

촉촉이 서린 눈물

새가 또 운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반백의 낮달이
망태봉 머리 위에 한가로이 떠 있다

소녀의 꿈 : 수국의 꽃말.

(그림 : 설종보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