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구판우 - 곰삭힘에 대하여
누렁이 황소
2021. 6. 19. 16:48
홍어에게 대충은 없다
대충은 삭힘이 부족하다는 건데
부족은 매운맛이 떨어진다는 건데
상에 오르며
얼굴 붉은 굴욕감만 게워낼 뿐이다
살아서 팔짝팔짝 뛰는 놈보다
바닥에 배 깔고 바짝 엎드린 놈
축 늘어진 놈을 처넣어야 한다며
홍어 속살 같은 볼그레한 아버지
이 악물고
아가리 틀어 항아리에 욱여넣는다
사나흘 푹 재우고
날갯살보다 뱃살 도마에 발라
왕소금에 한 점 콕 찍는다
애간장 녹이는 놈,
젠체하는 놈,
빵빵대는 놈에게 코를 꿰고
구린 놈,
줄행랑이나 놓을 줄 아는 얼빠진 놈, 놈
몸값은 제대로 하나
삭히는 법 잘 따르나
막걸리는 발효되기 전에 바닥 드러난다
(그림 : 정황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