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박주하 - 빗방울들

누렁이 황소 2021. 6. 19. 11:56

 

더 멀리 가봅시다

가장 멀리 가는 길을 알고 있는 것처럼

멀리 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각자 자기소개는 하지 맙시다

완벽한 하나의 사건처럼

순식간에 불거졌다가 사라집시다

시간이란 슬픈 눈망울을 버리고

흘러내리는 것은 목숨을 만져보는 일

전생에서도 잊지 못한 미소를 생각하며

최대한 멀리 뛰어내려 봅시다

서로의 어깨를 부축하지도 말고

젖을수록 단단해지는 돌멩이처럼

이 밤을 훌쩍 넘어갑시다

거짓말을 들은 기색 없이

서로의 눈물만 들고 바닥으로 달아납시다

바닥은 힘이 없으니 장렬하게 무너집시다

불빛이 비에 젖어 번지는

저 길바닥의 무늬 속으로 사라집시다

(그림 : 이형준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