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윤옥란 - 청미래덩굴

누렁이 황소 2021. 6. 4. 17:39

 

햇빛 밝은 숲 근처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한 쌍의 청미래덩굴이

갈참나무를 붙잡고 올라간다

 

잡을 것이 없으면

또르르 말려드는 청미래덩굴손

내 손을 잡고 놓지 않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동생을 포대기에 업고 학교를 간 적 있었다

시오리 길을 걸어가면서

코가 납작하게 눌릴 때에도

울지 않던 순한 아기였다

 

아기의 손은 청미래덩굴손처럼 내 어깨를 붙잡았다

등에 코를 묻히고 오줌을 지리고 시큼한 냄새까지 풍겼다

 

청미래덩굴손도 교실까지 업혀왔다

순간 아우성대는 교실안의 눈망울들이

나의 온몸에 씨앗처럼 박히는 듯 했다

 

가을햇살에 머쓱해진 나는

빨갛게 익어가는 탐스러운 장과를 꿈꾸었다

교실에서도 새잎을 내며 자라고 있었다

(그림 : 이혜민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