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류미야 - 다행한 일

누렁이 황소 2021. 5. 7. 09:01

 

이 생에서 나 하나 잘한 일이 있다면

고요한 견딤으로 기다릴 줄 알았단 것

이윽히 나비 날갯짓 바라볼 줄 알았던 것

 

바람 지난 자리에서 꽃잎 가만할 때까지

여윈 겨울나무에 여린 꽃눈 돋기까지,

멍 그늘 짙은 숲 속에선

가만 손등 감싼 것도

 

금빛 햇살 자란자란 물무늬 이는 강변

드러난 나무 밑동 위 낙엽을 덮어주며

갈대의 겨운 속울음 춤이 되는 걸 바라보네

 

별들의 불면 곁에서 선잠을 자다 깬 듯

이 생에서 나 무엇도 이룬 것 하나 없지만

고요히 바라보는 행복 알게 된 일 참, 다행이네

(그림 : 김명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