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황유원 - 계산동 성당

누렁이 황소 2021. 3. 30. 07:08

 

요즘엔 침묵만 기르다 보니

걸음까지 무거워졌지 뭡니까

한 걸음 한 걸음 지날 때마다 거기 벽돌이 놓여

뭐가 지어지고 있긴 한데

돌아보면 그게 다 침묵인지라

아무 대답도 듣진 못하겠지요

 

계산 성당이 따뜻해 보인다곤 해도

들어가 기도하다 잠들면

추워서 금방 깨게 되지 않던가요

단풍 예쁘게 든 색이라지만

손으로 만져도 바스라지진 않더군요

여린 기도로 벽돌을 깨뜨릴 순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옛 사제관 모형은 문이 죄다 굳게 닫혀 있고

모형 사제관 안에 들어가 문 다 닫아버리고

닫는 김에 말문까지 닫아버리고 이제 그만

침묵이나 됐음 하는 사람이 드리는 기도의 무게는

차라리 모르시는 게 낫겠지요

 

너무 새겨듣진 마세요

요즘엔 침묵만 기르다 보니

다들 입만 열면 헛소리라 하더군요

그러니 한겨울에도 예쁘게 단풍 든 성당은

편안히 미술관에서나 감상하시는 편이 좋겠지요

(그림 : 김이슬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