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신순말 - 그믐달
누렁이 황소
2021. 3. 23. 13:31
할매 돌아가시고
철둑길 막걸리집 막걸리 잔에
시큼한 상심을 풀어내시던 할부지
할부지요, 진지 잡수시래요
자주 주점으로 심부름 가서
문밖에서 할부지 부르는 저녁 시간
긴 골목은 더욱 길고
내 저녁길보다 더 길었을
할부지의 저녁에 떠오르던 달
입성을 깨끗이 차려드리던 엄마처럼
지푸라기 수세미에 비누 묻혀
할부지 흰 고무신을 자주 닦았다
판소리 좋아하시던 할부지를 따라
남문시장 국극단 천막에 들면
배우들은 곱디곱고 소리는 구성져서 슬펐다
고향을 다녀오실 때면 검정두루마기
중절모에 대님 반듯한 구두와 지팡이
좌정(坐定)하신 할부지에게 절하던 기억
막 이가 돋을 초승달이 아득히 어두워도
걱정하지 말아라, 모두 잘될 것이다
긴 잠 드실 때에 주셨다던 그 말씀 오른다
(그림 : 변혜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