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미옥 - 선창의 아침

누렁이 황소 2021. 3. 20. 09:02

 

어둠이 물러가고 넌출거리는 물결위로 해는

자색 장미보다 더 붉은 선혈 빛을 쏟고 선창의

여인들은 밤새 끙끙 앓았어도

무거운 피로도 언제 그랬냐는 듯 툭툭 털고

총명한 눈은 빛을 내며 또 한 날의 생존을 위해

새벽을 열어 바다를 다듬기 시작한다.

 

선창의 술렁임이 서서히 탄력이 더해질 때면

붉은 황토 흙 사이사이 돌덩이 툭툭 박은

간이 아궁이에는 서너 말 물을 부어도 넘치지 않을

커다란 양은솥이 턱 내 걸리고

골패만한 자잘한 생선들과 향긋한 나물, 별별 거

다 들어간 구수한 국 냄새 그윽하게 익어가고

 

홀로 앉아 깨작깨작 해장을 하는 사내의

머리카락에 밤새 뒤척였을 자유의 고달픔이 묻어있고,

밤배에서 막 하선한 어부들,

건너편 화력발전소에서 왁자하게 야근을 마치고 나온

성실한 아버지들 난장의 긴 걸상에 턱, 턱 걸쳐 앉으면

아지매들 목청 좋은 호객소리가 더 높아지는,

 

단골 아지매에게 인사삼아 야한 농담을 날리다가

걸출한 아지매들 더 세게 되받아쳐서 머쓱해서 웃고

해장국 한 그릇 대포 한 사발이면 긴 노동의 피로가

녹작지근하게 풀리는,

막걸리 사발 몇 순배 돌면 업무 탓에 큰 소리 나도록

다투어 한 며칠 뒤틀렸던 마음들도

말없이 녹아들어 다 이해가 되는 선창의 아침

 

이만큼 사는 것도 옛날에 비하면 잘사는 것이라며

해장국 한 대접 뚝딱 비울 때쯤이면 불같이 끓던

바다물결 서서히 금빛으로 자글대고

그날이 그날 같이 어느 듯 청춘은 다 갔지만

단골 아지매가 싼값에 준 산도다리 몇 마리

자전거 뒤에 매달고

퉁명스러운 아내가 새삼 그리워 페달, 바쁘게 밟으며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 다 그런 거라고…….

(그림 : 설종보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