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권수진 - 목련

누렁이 황소 2021. 2. 18. 13:10

 

왜 그런 경우 있잖아요
정말로 보고 싶은 사람이 연락은 닿지 않고
애타게 기다리는 날들만 반복되다가
속이 시커멓게 타버린 경우를 말이죠
내 생애 가장 화려했던 순간이 지나갑니다
지난 밤바람에 맥없이 툭툭 떨어지는
꽃잎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알 거예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 당신을 위해 살아왔는지
나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영겁의 세월이
얼룩진 기억으로 바닥 위에 수북이 쌓입니다
간혹 저를 지나치는 사람들은 말하죠
그동안 많이 아팠었니, 몰골이 말이 아니구나
바보처럼 속마음을 감출 수가 없군요
시련을 계기로 더욱 행복해진 사람들을 봅니다
나름대로 저마다 사연은 있겠지만
나로 인해 더 깊이 상처받는 사람들도 없어야겠죠
이렇게 계절은 또 말없이 지나가나 봅니다
아무런 약속이나 기약 없이 피고 지는
하얀 손을 당신에게 뻗으면 닿을 수 있을까요
늘 순결한 척하며 꽃잎 속에 숨겨 놓은
검은 속내를 모두 다 들켜버린 건 아닌가요
겉으로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면서
속은 문드러져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저 하나뿐이겠습니까? 그런 흔한 경우가

(그림 : 한부철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