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박남준

박남준 - 떡국 한 그릇

누렁이 황소 2021. 2. 12. 14:54

 

섣달 그믐

어머니의 한숨처럼 눈발은 그치지 않고

​대목장이 섰다는 면소재지로 어머니는

돈 몇 푼 쥐어 들고 집을 나서셨다

​사고 싶은 것이야 많았겠지요,

가슴 아팠겠지요

섣달 그믐 대목장날

​푸줏간도 큰 상점도 먼발치로 구경하고

사과며 동태 둬 마리 대목장을 봐오시네 ​

집에 다들 있는 것인디 돈 들일 것 있느냐고

못난 아들 눈치보며

두부전, 명태전을 부치신다

​큰형이 내려오면 맛보이신다고

땅 속에 묻어 뒀던 감을 내어 오시고

밤도 내어 오신다. 배도 내어 오신다

​형님의 방에는 뜨근뜨근 불이 지펴지고

이불 호청도 빨아서 곱게 풀을 멕이셨다

​이번 설에는 내려 오것제

토방 앞 처마끝에 불을 걸어 밝히시고

오는 잠 쫓으시며 떡대를 곱게 써신다

​늬 형은 떡국을 참 잘 먹었어야

지나는 바람소리

​개 짖는 소리에 가는 귀 세우시며

게 누구여, 아범이냐

못난 것 같으니라고

​에미가 언제 돈보따리 싸들고 오길 바랬었나

일년에 몇 번 있는 것도 아니고

설날에 다들 모여

떡국이나 한 그릇 하자고 했더니

​새끼들허고 떡국이나 해먹고 있는지

밥상 한편에 식어가는 떡국 한 그릇

​어머니는 설날 아침

떡국을 뜨다 목이 메이신다

목이 메이신다 

(그림 : 원은희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