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박철영 - 몸으로 쓰는 글

누렁이 황소 2021. 2. 8. 15:28

 

몸으로 쓰는 글은 흙에다 써야 한다

흙에 쓰는 글은 진실이란 말이 필요 없다

내 아버지 어머니도 흙에다 글을 썼다

흙에다 글을 쓸 때는 필기구가 필요 없다

흘린 땀이 필기구다

가슴 아픈 글을 쓸 필요도 없다

가슴 아프게 하면 흙이 슬플 것 같아

말은 흙에다 하지 않고 하늘을 보며 했다

나는 지금도 흙에다 글을 쓴다

흙에다 쓴 글은 지워지지도 않는다

지우개가 필요 없는 글을 읽어 본다

내가 쓴 글이 잘못 쓴 것은 아닌가

살피고 또 살피며 나를 들여다본다

잘못 쓴 글을 볼 땐

흙에다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운 일은 앞으로 적지 않겠다고

흙은 지나온 과거를 탓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림 : 김경주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