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정대호 - 아름답다는 것은
누렁이 황소
2021. 2. 1. 16:40
내게는 없는 것이다.
마음으로 애타면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릴 때, 아파서 누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방문을 열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검게 탄 농부가
도리깨를 들고
땀을 흘리며 보리타작을 하는 모습.
나도 저렇게 일할 수 있을까.
내 나이 열일곱
집을 떠나, 돈도 떨어지고
며칠을 굶은 어느 날
비 내리는 저녁, 골목길을 걷는데
굴뚝에 연기를 폴폴 날리며
밥 눋는 냄새가 퍼져 나와
구수하게 아름다워 보였다.
내 나이 스물둘, 유치장에서
공보리밥 반 공기 단무지 반쪽으로
한 끼씩 먹고 있을 때
옆 사람이 먹는
보리살이 섞인 흰 쌀밥
설탕물이 약간 밴 김치 몇 쪽
아름다워 보였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자꾸만 가고 있었다.
말 못 하는 아들을 안고 걸어가는
엄마가
한없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래 오래 서서.
재잘거리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
한 아이가 칭얼거리며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
안고 있는 아들도
저렇게 어울려 놀 수 있을까.
'엄마'라는 말을 들을 수는 있을까.
(그림 : 정종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