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말화 - 단골

누렁이 황소 2021. 1. 15. 10:07

 

또 한 분이 빠져나갔다

선친에게 물려받은 정 때문에

사나운 대형마트 기세에도 의리 지키던

단골이었는데

 

몇 남지 않은 발길 중 한 분마저

닳은 신발 버리듯 세상을 저버렸다

평생 농사일 손발 다 부르트다 이제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처럼 편안하겠다

 

손 없는 오늘

경운기 소리 묻히고 동재할배 장화가

낡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 먼저 간

장날 생선 좌판 욱이할매 웃음도

환한 주름 사이로 채소 팔던 순이할매 고무신도

다라이 텅텅 치며 골목 언저리를 걸어가는 것만 같다

아무리 멋진 신발을 내놓아도

한번 떠나버린 단골은 더 이상 돌아오지 못한다

 

신어줄 발이 없어 넘어지는 신들

신이 있어도 신을 수 없는 외로운 발들

흥해 고무신전에는

먼지 앉은 신발들만 갸릉갸릉 늙어간다

(그림 : 백용준 화백)